나는 지혜가 없는 사람인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한 사람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친구다.’ 주어진 삶을 멋지게 엮어가는 위대한 지혜는 우정(友情)이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이 행복을 혼자서는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행복은 친구가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직장에 있을 때 새로 오신 사장님이 발표한 것이 함께 살아가자는 내용으로 ‘오늘 일은 오늘 끝내자! 하루 한번 남을 칭찬하자! 활기차게 걷자!’ 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 사장님을 때때로 사모해 보며 필자 역시 마음속에 그려 보려고 무진 애를 쓴다.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저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가지고 칭찬하고 있다면 참으로 본인은 물론, 그 사람도 역시 행복감을 만끽할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얼굴빛을 하면서 립-서비스로 축하했다고 한다면 상대방은 물론, 자신도 말을 하고 나서도 찝찔할 것이다. 자신도 이웃과 친구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야 인생이 훨씬 아름다워질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스승 등 수 많은 사람의 하루하루를 많은 끈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다는 말이 되겠다.
물론 운7 기3(주1)이나 기7 운3이 되던지 모두가 그에 알맞은 풀이를 사람들은 하는 것이지만 심온[필자의 호]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 마음 중심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일 것 같다. 내가 마음속에 석가여래를 모신 분은 절에 가서 공양을 드리고 시주를 하며 사는 것 같았다.
어제도 우리 일행은 심학산에 등산하면서 함께 간 친구와 선후배께서는 불상 앞에 108배는 안 되어도, 엎드리고 일어나는 3배를 하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왜 저분들은 저렇게 정성을 들인 것일까? 또 앞에 모셔놓은 불상은 오른손에 구슬 같은 둥그런 것을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가락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물었다. 저기 부처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둥글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동그라미를 달라는 건가요? 동그라미를 중생들에게 주어라는 표신가요? 아니면 달라는 표시냐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법사 되신 김 선배께서 절을 드리고 밑으로 내려오기에 여쭈었더니 그게 아니고 저기 보이는 항아리는 약통인데 지금 닫혀있는 것은 병들어 고생하는 중생들에게 약을 나누어주는 “약사여래불”의 형상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서 여기 절 이름이 지장사(地藏寺)라 하며, 명승 고찰로 이해하고, 지금도 기억이 된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한 선택일 뿐이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 일행이 이곳으로 등산을 왔기에 이런 절도 구경할 수 있음은 오직 관계(Relation)이라 여기면서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사람과 만나며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본다. 하찮은 짐승이나 벌레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바, 특히 서로 상부상조함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면 의사를 찾아야 하고, 때로는 몸을 보(補) 해 주는 보약, 사(死)해 주는 보약이나 한약을 먹고 몸의 균형을 잡게 되는 것도 일종의 관계 한다고 본다. 요사이 집사람이 백내장 수술 전부터 목이 마르는 입 마름 증세로 밤에 잠을 통 못 잔다. 구강 건조증으로 몸이 아프다 보니 자주 짜증 섞인 언사를 사정없이 뱉어내곤 하지만 필자는 참고 또 참자 하면서 지혜를 배워간다. 실은 1969년 12월 19일 결혼하고 지금까지 보약이나 영양제 그리고 양약도 거의 먹질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끼며 역시 지나고 봐야 확실히 안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것이다.
누구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고 운명을 개척하면 어떠한 위기라도 극복할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본다. 오늘은 나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하고 어떤 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주고 또 배워 볼 것인가를 마음속에 그려 보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지난날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옵시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알찬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백성에게 만복을 허락하여 주옵시며, 남북 대치상황이 빨리 끝이 나고 살기 좋은 금수강산 대한민국이 되게 하여 주시오며, 전 세계에 나가서 일하는 수많은 산업 전사들의 건강과 가정 그리고 사업 위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기원하고 나니 벌써 새벽이 지난 것 같다.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가 되어서 나로 하여금 복이 되며, 나로 인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참다운 지혜를 말할 때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잠언 3:16]’라고 했다. 그야말로 공감이 되며, 아멘! 이라 동의를 표하는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 신자로서 등산했던 그 날도 산우들에게 그렇게 증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저마다 현재 세상을 살아가는 현세관(現世觀)과 미래관이 있는 것이니, 서로가 존중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 일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어느 종교나 죽으면 좋은 곳에 부모님이나 망자가 가기를 빌고 원할 것이다. 천주교는 천국, 기독교는 하늘나라, 불교는 극락왕생, 힌두교나, 이슬람교 역시 천국일 것이다. 추구하는 목적은 비슷하겠지만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말하겠다. 그러나 이런 모든 종교의 교주라 설명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모두 이 세상에 왔다가 다 죽었다.
물론 가장 짧은 생애를 마친 분은 예수그리스도임은 모두가 아는 것으로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유대인들의 공모와 시기, 질투심으로 그리고 로마병정들의 창에 의하여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역사이다. 그가 무덤에 죽어 장사한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신다는 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참다운 지혜는 여러 종교를 믿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그중에서 본인이 취사선택을 잘해서 바로 믿고 나가는 것도 참다운 지혜라 여긴다. 지혜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되는 것이다. 참된 지혜를 얻고자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가 바쁜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를 해 보는 것도 참 지혜라 여긴다.
우리가 하루를 산다는 것은 창조자가 준 삶의 특권이며, 그래서 우리는 삶을 귀히 여기는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구하게 되면 창조주께서 내려주신 우리 부부만이 누려야 할 신성함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될 수도 있으며, 자기 마음대로 인생의 목표를 실현한다면, 낭패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오직 진리(Logos)가 되시는 그분만을 통해서 삶의 경이로움과 참으로 복이 됨을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자기들만이 경외하는 주님께서 주신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종종 세브란스 병원에 걸려있는 기도문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것을 읽고 있으면 참으로 마음의 편안함과 새로운 지혜를 얻어가는 기분이리라.
(주1) 운7 기3 : 인생사 운칠기삼이다. 삶에 있어서 운이 70%를 좌우하고 의지가 30%를 좌우한다는 뜻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이를 바꿀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어떻게 기회를 선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곧 운7 기3 그리고 기7 운3도 된다.
<시니어리포터 최수남>